라이프타임
100818
이 토끼
2010. 8. 19. 02:18
- 어쩐지 초저녁부터 졸립다 싶었다. 왠일로 10시부터 꾸벅꾸벅 졸다가 무릎팍도사가 끝날때 쯤 깼는데, 씻고 나서 일찍 자 보려고 누웠지만 역시 잠이 오지 않는다. 몇일 전 아주 살짝, 진짜 살짝 옆 차를 스쳤을 뿐인데 보험료가 14만원 쯤 올랐단다. 허허허. 할 말이 없다. 전에 아르바이트 하던 학원의 팀장님과 잠시 하던 일을 도와줬던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잘 살고 있지는 않아도 무언가 하며 지내고 있어야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안부라도 물어볼텐데, 이건 뭐 시간이 갈수록 제자리라 그 유예기간이 길어지고만 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3개월가량 발버둥치다 그 시간이 계속 반복될 것 같아서 솔직히 8월엔 손을 놔버렸다. 덕분에 핸드폰 요금도 학자금 대출도 다시 마이너스로 고고.
- 오늘 하루 내가 뭘 했는지 생각해본다. 또다시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했고, 멍하니 깨어있다 잠이 들었고, 12시가 가까워지면 일어나 밥을 먹고, 멍하니 있다가 책을 몇 장 읽다가 영화를 조금 보고 티비를 보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이런 날들의 반복. 유난히 오늘따라 시간이 더 빨리 간 것 같다. 그래도 이틀에 한 번 꼴로는 이력서를 내고 있다. 하루는 희망을 갖고 도전해 보는 거고 그 다음날은 기다리는 날이다. 아직 연락이 온 곳은 없다. 섭섭하고 실망하는 일은 하루면 족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기회를 찾아다닐 것이다. 그 와중에 하루에 한 가지라도 정해놓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이제와서 고민하고,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정말 한도끝도 없다 싶어 내가 내 등을 떠밀고 두드려준다.
- 내가 고등학교 3학년 4,5월쯤에 진로를 연극영화과로 바꿨을 때 내 결정을 존중해줬던 것은 그 때 집에서 나를 신경쓸 만큼 여유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도 내 생각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해주긴 했었지만, 그렇게 쉽게 '그래 한 번 해봐' 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공부도 곧잘 했고 학교에서도 큰 문제없는 보통의 아이였다. 가끔 만나는 중학교 때 친구는 내가 영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사춘기 적 반항 정도로 생각했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사실 내 진로는 좀 자주 바뀐 편이라 엄마는 얘가 이 쪽으로 진짜 갈 거라고는 별로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뭘 믿고 수시도 2학기 때 한 군데만 쓰고 조건부로 합격하더니 수능을 못 쳐서 떨어지고는 (- _-), 면접만 보는 전문대에 지원해 덜컥 불어왔다. 그러다가 학교에 엄청 열심히 다니더니 졸업하고는 이러고 있다 ㅋㅋㅋㅋ
- 나의 든든한 지원군은 우리 엄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엄만 좀 당찬 구석이 있었다. 집이 힘들어졌을 때 먼저 일어선 것도, 우리 가족을 끌어당긴 것도 아빠가 아니고 엄마였다. 가끔씩 깜짝 놀랄 만큼 멋있는 말을 해줄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를 너무 사랑해줬다.
가끔씩은 엄마도 취업을 하는게 어떻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 칠 만큼 뻔뻔하지는 못해서 아직 하고 싶지 않은데, 정도로 대답하곤 한다. 내 고집을 알고 있어서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하는 소리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도 밥 잘 먹으라고 챙겨주고 일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등 두드려주는게 어딘가 싶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세상에 건강하게 태어나 큰 사고나 병 없이 잘 살고 있고, 내 곁에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멋진 어머니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너무너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비록 생각이 많아져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금이지만 더 용기를 내야겠다고 힘을 내자고 씩 웃어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