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끼 2011. 11. 8. 00:31

- 지난 새벽, <천일의약속>을 1회부터 6회까지 몰아서 봤다. 재밌었다. 솔직히 김수현 작가님의 작품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조금 챙겨본 것이 전부다. 독백 같은 대사와 토씨 하나조차 대본과 틀려서는 안된다는 그런 거부감보다, 어느 한 장면도 그냥 흘려서 쓴 것 같지 않은 그 꼼꼼함이 마음에 든다. 그런 점이 관록인가 싶다. 여배우 중에 수애를 참 좋아한다. 그녀의 눈빛도 입술도 미소도 매력적이다. 가슴 아픈 드라마가 될 것 같기는 하지만 모처럼 끝까지 챙겨보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저녁엔 7회를 티비로 봤다. 엄마가 국 끓이는 소리와 아빠가 쿠키 산책을 다녀오는 소리로 방에서만큼 집중해서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몰입도도 떨어져 기대한만큼 재밌지도 않았고. 차라리 다운 받아서 보는게 나으려나a 그러고보니 월화드라마를 챙겨보는 것도 엄청 오랜만이네- 

- 몇일전, 아직도 영화를 꿈꾸고 있는 동기를 만났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껏 열심히 달려온 만큼,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현실이 모두 영화를 향해 있어서, 조금 부러웠다. 그는 시간이 좀 더 지나, 그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모두 현장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이해한다. 나도 한때는 그런 것을 꿈꿨으므로. 내가 처한 현실이 그의 꿈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그래, 정확하게는 그의 꿈이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서글퍼졌다.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닌데, 왜 나는 서운했을까. 귀엽게도 오늘 나를 만나면, 영화 얘기는 하지 않고 사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단다. 그런데도 하고 보니 80% 이상 영화 얘기만 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고 나는 정말 좋았다. 영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언제 만났었는지도 나는 이제 기억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내가 좀 더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훨씬 재밌었을텐데. 그렇게 나는 또 나의 친구들과 다른 곳을 향해 서 있었구나. 스물여섯이 되어도 알 수 없는 인생은 마찬가지구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을 또 한번 곱씹는다.

- 10월10일, 마지막 방송을 한 후 한달이 되어가고 있다. 충분히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아직 손발은 깨끗하게 낫지 않았다. 친구 말로는 2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하고, 의사 선생님도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뭐 그러려니 하지만, 어쩌다 이런 쓸데없는 병에 걸렸나 싶다. 어쨌든 12월에는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

-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경비는 모처럼의 엄마 찬스를 쓸 생각이다. 선뜻 도와주겠다고 한 엄마에게 고마운만큼, 아직도 이런것 하나 나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내가 초라했다. 장소는 정해서 가지만 계획은 없이 갈 생각이다. 마지막 돌아올 기차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있는 만큼 있어볼 생각이다. 터무니없는 무모한 계획이긴 하지만, 그만큼 준비하는 것에 진을 빼고 싶지 않다. 새 운동화와 카메라 수리가 끝나면 바로 출발해야겠다.

- 아직도 GMF 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반자카파, 소란, 이적, 스윗소로우, 기껏해야 슈퍼스타K 의 노래만 매일 듣고 있다. / 쉬는 동안에 홈페이지 리뉴얼을 하고 싶은데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예전의 나는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창작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