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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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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29 휴식기

휴식기

monologue / 2011. 10. 29. 23:15

오늘도 오후 3시에 일어났다. 알람 소리를 들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오전에 잠깐씩 깨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일어나지 못한다. 깼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다 시계를 보면 12시가 넘어가 있다. 그제서야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몇십분 더 잠을 청한다. 일어난다. 허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다. 쿠키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평일엔 내 곁에서 자고 있거나 거실에 있을 것이고, 주말엔 누군가의 곁에 있을 것이다. 벌써 몇주째 너무나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으므로 피곤할리 없는데도, 잠이 들고 잠에서 깨고 시간이 흐르고 외출을 하고 지하철을 타는 일상의 반복들이 나는 너무 피곤하고, 지루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간단한 일과들을 시작한다. 쿠키 산책, 설거지, 좀 더 지나면 밥을 하고, 요리 비슷한 것도 시도해본다.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가족과 함께 먹는 것도 좋다. 다 먹은 후에 깨끗해진 부엌을 보는 것도 좋다. 하루에 고작 두 끼를 챙겨먹는 동안 메뉴를 정하는 일은 어렵다. 당연히 시간대도 불분명하다. 으레 둘 중의 하나는 라면이 된다. (그 라면이 이제 지겨워질 때도 됐다) 그러나 되도록 맛있게, 먹으려 노력한다. 집에서 사는 생활이란 그런 거다.

챙겨보던 드라마나 재밌다는 예능 프로그램 다운로드를 걸어놓고, 다른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은 후에도 여전히 노트북에 시선 고정. 자세는 점점 기울어진다. 결국 누워서 보는 자세에 이른다. 처음엔 편하다. 시선에 따라 베개를 받쳐주면 부러울 게 없다. 점점 모로 눕는 자세가 된다. 목이 아프다. 팔로 받쳐본다. 이불을 끌어올린다. 뒹굴뒹굴. 쿠키가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한 편을 보고 나면 손을 뻗어 다음 편을 튼다. 또 본다. 재밌다. 때론 슬프기도 한다. 너무 재밌으면 일어나 앉아서 본다. 내가 누워있는 이 공간이 요즘 나의 생활의 가장 큰 zone 이다.

방안에서 내가 먹는 모든 음식과, 나의 호흡과, 나의 생활이 더해져 방 안 공기가 답답해지고 머리가 아파질 때면 바깥 바람을 쐰다. 곤히 자고 있는 쿠키를 깨운다거나, 동네를 산책한다거나, 간단한 간식을 먹는다거나, 최근에 구입한 '어반 자카파'의 앨범을 계속 듣는다. 바로 전에 구입한 앨범은 성시경 7집과 정기고의 싱글 2장이었다. 최근에 구입한 앨범들이 참 좋다. 씨디의 매력이란 그런거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무한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1번 트랙이 끝나고 2번 트랙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 그 다음 곡도 그 다음 곡도,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정해진 순서대로 반드시 그 노래가 나온다는 것.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쉬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물론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를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충분한 휴식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연락이 닿는 대로, 시간이 맞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한다. 각기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내 또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민들은 꽤 비슷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똑같이 늘어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말을 아끼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

외롭다. 요즘 자주 연락하는 선배와 나의 대화 주제는 늘 '외로움'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 쓸쓸해지고, 따뜻한 손을 잡고 싶고, 그동안 만날 뻔한 사람들의 손을 왜 그렇게 많이도 놓아버렸는지 후회하는. 사실은 스물여섯 해를 살면서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후회와 외로움이다. 그런 적이 없었다. 오는 사람 떠나는 사람이 아쉽지 않았다. 그들과 반드시 함께가 아니어도 내 곁엔 사람들이 많았고, 충분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벅찼고, 항상 바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주위에 넘쳐나서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신경을 써 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00%를 채워줄 것도 아니면서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내 인생에선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는 오늘처럼 이렇게 후회할지도 모르고. 막상 만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귀찮아 할거면서. 적어도 초등학생 때 나는, 먼저 손을 내밀줄 아는 아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다.

그래서 늘 고프다. 무엇이 어떻게 고픈지 몰라서 늘 배가 고프다고 판단한다. 밥을 먹고, 무언가를 먹고, 또 먹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위의 적정량을 넘겨 배부른 상태가 싫어서 그렇게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마음이 헛헛해서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먹고 나서도 후회할거면서. 그렇게 억지로 구겨넣고 나면 토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이 외로울 때 배까지 고프면 서럽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쳐다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기웃기웃 거린다. 그들의 삶은 재미있나. 다들 잘 먹고, 잘 만나고, 잘 살고 있나. 


오랜만에 본 무한도전은 여전히 재밌다. 1박2일 시청자 투어 3탄도 찾아본다. 재밌긴 했는데 그래도 2부가 끝날 때까지 부산에 도착도 못한건 좀 그렇다. 그래도 100년의 삶을 그대로 초대한 기획력은 인정. 재밌었겠다. 무척 힘들었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과 그 많은 촬영 테잎과 그 많은 캡쳐와 그 많은 오케이 컷과 그 많은 편집본. 4부 나올만 한데?(웃음). 그랬구나. 그 1년여 동안 나는 방송을 꽤 좋아하게 됐구나. 
 
시간이 주어지면 하려고 했던 일들을 하나씩 적기로 한다.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었지. 보고싶었던 영화와 책 리스트를 적어뒀었지. 내가 했던 프로그램을 한편씩 다시 보려고 했었지. 방 정리를 하려고 했었지. 운동을 하려고 했었지. 어딘가로 떠나려고 했었지. 시간이 주어지면 하려고 했던 일들을, 늘 '내일' 적기로 한다. 그렇게 또 밤이 가고 새벽이 오고 겨우 잠이 들고 또다시 낮에 눈을 뜬다. 

건강 때문이지만 휴식을 결정했을 때, 나를 쫓기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약속에, 하려고 했던 일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로 바뀌지 않도록. 그런데 내가 나를 쫓아다니고 있다. 미치겠다. 많은 영화를 봤고, 드라마도 봤고, 방송도 봤고, 책도 읽었고, 사람들도 만났다. 이 정도면 되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불안한걸까. 내가 이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쓸데없는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지금 이 순간 조차도, 사실 나는 참 좋다.



Posted by 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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