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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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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9 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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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타임 / 2016. 12. 9. 01:53

 

- 지난 달, 우리 집은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다행히 녹화주가 아니어서 믹싱날인 금요일 하루, 양해를 구할 수 있었고 집으로 가서 집밥을 먹고 엄마와 이케아에 한 번 더 다녀왔다. 식탁 의자와 이불 커버 등 사야할 물건이 몇 가지 더 남아 있었는데, 나는 꼭 엄마에게 예쁜 쿠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이케아에 두 번째 와서인지 섹션별 위치나 소품들이 눈에 많이 익어서 전보다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아빠를 만나 동네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틈틈이 집에 갈 때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아빠와 소주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참 좋다. 

각자 박스에 넣어야 할 물건들을 좀 더 정리하고, 잠이 안와서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7시반부터 이삿짐 센터가 들이닥쳤다. 신속하게 착착 짐을 빼고 버릴 가구를 내놓고 엄마와 나는 수거용 구청 스티커를 붙였다. 중고센터에서도 와서 에어컨과 밥솥 등 몇 가지를 갖고 갔고 엄마의 손엔 2만원이 주어졌다. 다들 배가 좀 고팠지만 속도를 낸 김에 새 집에 바로 짐을 옮기기로 했다. 사실 정말 많은 가구와 가전제품을 버리고 가는데다, 새로 주문한 가전제품은 이미 새 집으로 배송받았기 때문에 짐들만 남아 있었다. 모든 물건을 다 올리다 보니 올해의 첫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서둘러 짐을 옮기기 잘했다며, 또 이사하는 날 눈이나 비가 오면 좋은 징조라며 좋아했다. 모든 짐이 새 집에 들어왔고 우리는 이사하는 날에 으레 먹는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좁지만 오랜만에 생긴 식탁에,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의자에 앉아서 (새로 산 식탁 의자가 재고가 없어서 하나밖에 사지 못했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먹었다. 농담 삼아서 이사하는 날 중국음식을 먹자고 했는데 진짜 그렇게 앉아서 먹고 있으려니 좀 웃겼다. 그리고 참 좋았다.  

 

대학생 때 마포를 떠나던 날도 떠올랐고, 그 이후 10년간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데 이전의 집 구조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몇 년 전에 내가 독립 했을 때, 이 곳도 진짜 아무 것도 없는 방이었는데, 라며 그 때 생각도 나고. 그 때도 몇일간은 이전에 쓰던 쇼파매트 같은 것에서 이불만 덮고 자다가 책상과 침대가 들어오고, 선반도 달아서 뭔가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집이 되었지, 하고.

밥을 먹고 서둘러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 밤에 다시 편집하러 회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최대한 많은 양의 수납과 쓰레기 분리를 해주고, 허리가 많이 아프다는 엄마를 위해 바닥 청소까지 해주고 가고 싶었다. 그렇게 엄청 서두른 덕분에 저녁 7시가 넘었을 때 어느 정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방 바닥 청소를 해주고 새로 산 이불 커버를 씌워주고, 엄마 침대를 정돈해줬다. 이제부터 이 곳에서 엄마, 아빠의 따뜻하고 포근한 하루하루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내가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것과는 상관 없이, 열심히 일을 하며 살고 있어도 여전히 나의 미래도 불투명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엄마, 아빠의 집까지 마련해주지는 못할 것 같아서 나는 내심 불안하고 또 미안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실로는 두 가지를 다 충족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자식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니까. 엄마는 어쨌든 이사를 하고 나니 참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주로 이사의 전체적인 부분을 진행하고 신경 쓴 사람은 역시 엄마였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단다. 막상 일을 치르고 나니 속시원하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마음 한 구석에 '이사'에 대한 생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더 신경써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한편으론 내가 내 일을 잘하고 있는 게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는 한달 정도의 기간이 참 쉽지 않았다.

최대한 이사 전에 준비할 것을 해결하고, 12월이 되어선 몇 가지 더 준비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 중이다.

 

한편으론 결국 5년 후에 시작되는 빚 잔치가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선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도, 이사 하는 날 눈이 온 것도, 우리가 가진 예산과 어느 정도의 대출금으로 무사히 이사를 잘 마친 것도. 나는 엄마에게 이제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Posted by 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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