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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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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는 날

monologue / 2009. 5. 11. 02:00

문득 처음 이 집에 이사오던 날이 생각난다

2학년 기말고사가 막 끝나고서야 난 우리집이 이사를 가야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고작 20분 더 걸어가야 하는 등교길이 싫어서, 엄마한테 울며불며 떼를 썼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 적응해 나가면서 이 곳은 '소중한 나의 집'이 되었지만
엄마, 아빤 늘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무사히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비록 한시간 반 거리를 지하철로 통학하긴 했지만)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또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곳은, 바로 이 집이었다

이사 가는 날, 이사를 간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어린애도 아닌걸, 뭐. 그저 사는 집이 바뀌는 것 뿐
학교가는 길이 조금 더 편해진 것 뿐, 주택에서 아파트로 가는 것 뿐
신촌이나 홍대보다 안산이 좀 더 가까워진 것 뿐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별에 눈물은 필요충분조건이었던가
그래, 고작 1년여 동안이었지만 많이 정들었던 이 곳을
오랫동안 살아왔던 마포를, 그리고 서울을, 떠나는 거였는데..


나는 사실 이 곳을 꽤 많이 좋아했었지
낮에는 엄마 손 잡고 채소가게에 가는 걸 좋아했고
밤에는 타박타박 달려서 슈퍼에 심부름 가는 걸 좋아했었지
기분좋은 햇빛이 쨍쨍 비치던 날, 대문을 나서며 '날씨 좋-다' 라고 생각하던 맑은 날을
비가 촉촉하게 내려 땅바닥을 적시던, 그래서 나가기도 싫고 김치부침개만 생각났던 날을
예고도 없이 흰 눈이 내려 어린애처럼 창밖을 내다보던 눈 내리던 날을

그리고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우리 집 앞의 밤 공기.
주홍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 있던- 그 골목길의 밤공기를
나는 언제쯤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새로 이사가는 곳도, 나는 많이 좋아하게 될테지만
이전에, 또 그 이전에 살았던 집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 곳만은, 기억해두고 싶다
나의 짧았던 삶 중에서, 처음으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기를 보냈었던, 이 곳을.





아주 어렸을 때, 경기도에서 마포로 이사오던 날, 1994년 9월 3일 토요일.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이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또박또박 인사를 잘 하고 싶었는데(웃음)
마지막 인사를 하다 내가 울어버려서 반 애들도 다 울어버렸고
나는 울면서 아빠 차 뒷자석에 탔고 그렇게 늘 이모네 집을 오가던 길로-
서울로 향하던 그 날.

나는 더이상 9살의 꼬맹이가 아닌, 그 때로부터 무려 11년이 흘러 나이 앞자리에는 2자를 달고
여전히 아빠 차 뒷자석에 타겠지만 그래도 이번엔 웃는 얼굴로
다시 경기도로 향한다, 내일.


나는 8살 때 이전의 어린시절 기억은 한 개도 없고, 언제부턴가 벌써 기억력이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 곳에서 살았던 내 삶의 순간만큼은 잊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 2005年 5月 15日
Posted by 이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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